공중무기·장비

베트남공군에서 한국공군으로 넘어온 F-5A 자유의 투사

有美조아 2016. 11. 24. 18:15
베트남 멸망후 다시 한국공군으로 돌아온 기구한 운명의 F-5A 자유의 투사 (Freedom Fighter) 기체번호 66-9131 전투기.

사진은 1971년 9월 베트남 남무 비엔호아 공군기지에서 750 파운드 폭탄을 주익에 장착하고 출격대기 중인 모습이다.이 전투기는 F-5A 블록 30형으로 시리얼번호는 6235이다. 미공군이 67년 9월 23일 베트남공군에 공급했다. 베트남공군 63 전술비행단에서 활약하다가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으로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면서 탈출하였다가 같은해 한국공군에 넘겨졌다. 공군에서 F-5A는 2005년 퇴역하면서 더이상 볼 수 없는 기체이다.

베트남 부패와 무능 등으로 무너진 정권

트럼프가 당선 확율이 높은 이시간. 무능한 정권과 그 정권 잡는데만 혈안이 된 작자들과 부패한 검.경.관.결코 남의 일같지 않은 작금의 나라에서도 F-5를 볼 수 있다.





F-5 전투기, 대한민국 영공 50년간 지킨 '현역'

공군 현대화 시작의 중심 F-5 전투기…현재도 '중요한 항공자산' (뉴데일리 순정우 기자 2014.11.30)

2015년 4월이 되면 한국공군이 F-5 시리즈 전투기를 운용한지 50주년이 된다. F-5 전투기는 지금도 우리 군 레이더에 TAL(한반도 휴전선을 기점으로 전술조치선·Tactical Action Line)지역으로 근접하는 북한 군용기가 포착되면 가장 먼저 비상출격하는 항공자산이다. 한국은 F-5 전투기 세계최다운용 국가이다. (밀리터리 밸런스 2014기준, F-5E/F 174대)



2005년 퇴역한 F-5A 편대 비행




◇1960년 공군의 고민‥"마하2급 전투기를 확보하라"

대한민국 공군은 F-86 세이버 전투기로 제트전투기 시대를 열었지만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무기경쟁에 따라 항공전의 양상은 초음속 전투기 시대를 맞는다. 1958년을 기점으로 미 공군이 초음속 전투기를 도입하기 위해 F-86F 전투기의 운영을 중단하면서 공군은 군수지원체계상의 문제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북한군이 F-86F 전투기보다 성능이 우수한 MiG-17과 MiG-21을 보유함에 따라 우리 공군은 초음속 최신예 전투기 도입의 필요성을 미국측에 적극 제기했다.

그 결과 1960년 군사원조계획에 F-104G 전폭기 도입 계획이 반영된다. 1961년 록히드 마틴(Lockheed)이 개발한 F-104G 전폭기는 최대속도가 마하 2에 달하며 공대공/공대지 임무가 동시에 가능한 전천후 제트전투기다. 이에 따라 우리 공군은 F-104G전투기를 1965년부터 운용할 계획이었으나 군사원조정책이 변경되면서 노드롭(Northrop)사에서 개발한 F-5A/B(프리덤 파이터Freedom Fighter) 전투기를 도입하게 된다. 당시 초음속 만능론에 따라 F-104보다 느린 F-5도입에 일부 불만이 있었고 대만과 일본에는 이전투기가 제공되는데 반해 유독, 한국에만 F-5를 제공해 또다른 논란이 있었다.



2005년 퇴역한  F-5A 편대비행




F-5A/B(F-5A는 단좌, B는 복좌) 전투기는 미국이 동맹국에 제공하기 위해 연습기 T-38 탤론(Talon) 항공기를 토대로 제작됐으며 최고속도 마하 1.44에 기동성능이 뛰어난 전투기였다. 훗날, F-5는 F-104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추락이 잇따르자 조기 퇴역하면서 '뀡 대신 닭'이 아닌 독수리가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 공군은 1965년 4월 30일 수원기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하워즈 유엔군사령관 등 내외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F-5A/B 전투기 최초 도입분 20대에 대한 인수식을 거행함으로써 아음속수준을 초음속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공군 현대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남베트남 공군력 강화를 위해 한국에 공여했던 F-5 20대를 되가져가면서 당시 가장 최신예 전투기인 마하 2급 F-4C 팬텀의 한국 도입에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도 했다.



2005년 퇴역한 F-5A 퍈대비행




우리 공군의 특수(곡예)비행팀인 Black Eagles의 주력기종으로 활약하기도 한 F-5A/B 전투기는 F-16, F-4와 더불어 영공방위의 핵심적인 삼각편대를 이루어 한 시대를 풍미한다. 우리 공군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라는 수식어를 남긴 채 2005년 일선에서 퇴역한다. 일부는 필리핀 공군에 재 공여되기도 했다.

F-5A/B의 도입에 이어 공군 현대화 및 전력증강 계획에 따라 한국공군은 MIG-19 및 MIG-21 전투기를 제압하는데 최적기인 F-5E/F(타이거II Tiger II) 전투기를 추가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1974년 8월 27일 4대를 최초로 도입한 이후 1977년까지 총 72대, 이후 1980년까지 60대를 추가로 도입했다. 공군은 F-5를 장기간 운용한 만큼 혁혁한 공을 세운다. 특히 대간첩작전에서 간첩선 퇴거 및 격침시키는 등 강력한 공중지원의 밑거름이 됐다.



2005년 퇴역한 F-5A 편대비행




박정희 대통령은 1978년 1월 연두 기자회견 석상에서“1980년대 중반에는 전자 병기와 항공기를 생산 할 수 있도록 개발 능력을 키워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이어 같은해 8월 26일에 열린 제1차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에서 항공기 생산 계획을 연내에 앞당겨 착수할 것을 지시했다.

이듬해인 1979년 7월 1일 대상기종을 노드롭社의 F-5E/F로 결정한 정부는 1980년 10월에 미국과“F-5E/F 항공기 공동생산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주관 사업자로 대한항공을 선정한다. 면허생산 형태로 진행된 국산 전투기 제작사업은 대한항공이 기체생산 및 조립을 담당하고, 삼성정밀(현 삼성테크윈)에서는 엔진생산을 각각 담당해 총 7년의 사업기간(1980년~1986년) 동안 23%의 국산화율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82년 9월 9일 국산 전투기의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한지 불과 10개월 만에 제공호 1호기인 KF-5F 출하행사가 대한항공 김해공장에서 성대하게 실시된다. 이후 한국정부는 KF-16도 면허생산한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일본과 대만에 이어 3번째의 전투기 생산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으며, 이날 전두환 대통령은 하늘을 제패하라는 뜻으로 “제공호”라 명명했다.

우리 공군은 1958년 4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RF-86 항공기를 대체하고 독자적인 정보수집체제의 발판을 구축하기 위해 1972년 6월 RF-5A 항공기를 군원으로 도입한다. F-5A와 동일한 플랫폼(Platform)에 전방 및 측면정찰용 파노라믹 카메라인 KS-92A를 장착한 RF-5A 항공기는 우수한 정찰능력과 기체성능을 겸비해 1973년부터 1977년에 걸쳐서는 특수비행팀 Black Eagles의 주력 기종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한국공군 RF-5A 정찰기




공군은 RF-5A 항공기는 39전술정찰비행전대에서 RF-4C와 함께 우리 군의 항공정찰 및 항공사진정보 지원임무를 책임지고 수행하다가 2007년 7월1일부로 도태돼 더 이상 RF-5A 항공기를 운영하지 않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99년 T-38 탤론(F-5 개발의 모티브가된 항공기) '고등훈련기'를 리스형태로 미공군에서 도입해 운용하다 2005년 국산훈련기 T-50을 도입하면서 반납하기도 했다. 특히 F-5 최후의 개량형으로 불리는 F-20(F-5G) 타이거샤크 전투기가 1984년 한국에 왔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이 보고있는 바로 앞에서 시범비행 중 추락, 조종사가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영공을 50년간 지켜온 F-5전투기는 미공군이 잠시 운용했던 F-5C, 미해군 F-5N을 제외한다면 모든 기종(A,B,E,F,G,R,T-38)이 한반도 영공을 날아다녔다.

이제 F-5 전투기 임무는 국산 경전투기인 FA-50으로 대체될 예정이지만 국내서 최근 개발한 GPS유도 폭탄(KGGB)의 장착이 가능해져 정밀폭격도 가능상태다. 면허 생산된 KF-5 최후기형은 사출좌석변경과 일부 전자기기 추가 과정을 거쳐 2020년을 넘겨 영공수호 임무를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공군 F-5E 전투기





출처    http://korearms.egloos.com/1248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