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무기·장비

냉전이 만들어 낸 괴물, M65 원자포(Atomic Cannon)

有美조아 2015. 5. 29. 21:00

 

 

 

M65는 핵폭탄을 실제로 발사했던 원자포다. 1953년 실험 당시의 무시무시한 모습.

 

 

 

핵무기는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내가 상대를 핵무기로 공격한다면 그 이상의 엄청난 보복이 있을 것이고 당연히 많은 피해가 예견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뜻 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없을 정도로 핵무기의 위력은 엄청나다. 최초 폭발 시 발생하는 무서운 파괴력도 어마어마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후유증이 나타나는 방사능 오염 피해 또한 심각한 문제다.


 

무기는 사용하는 도중에 아군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운용된다. 그래서 방사능에 의한 피해 위험 가능성이 많은 핵무기는 사용하는데 더욱 제약이 많다. 위험 반경이 크다 보니 아군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적을 타격하는데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원거리에 있는 적의 요충지를 전략적으로 타격하거나 아니면 내가 승리할 수 없다면 너도 함께 죽자는 극단적인 마지막 상황에서나 사용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개념이 처음부터 정립된 것은 아니었다. 핵의 파괴력은 처음부터 확인된 사항이었지만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서는 상당히 이해가 부족하였고 이 때문에 지금은 상상도 못할 어처구니없는 일이 핵무기 초창기 시절에 많이 벌어졌다. 내습하는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방공용 전술 핵폭탄인 AIR-2 같은 경우도 그런 어이없었던 예 중 하나였는데, 사실 당시에 그런 시도가 다방면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군사적으로 1950년대는 핵무기 만능주의 사상이 지배하였던 시기여서 미국과 소련은 다양한 종류의 핵폭탄과 이를 운반할 각종 플랫폼의 제작에 열성적으로 매달렸다. 이때부터 개념을 정립한 전략폭격기, 전략잠수함, 장거리미사일 같은 경우는 지금도 3대 핵무기 운용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이외에도 더 많은 수단이 존재하였다. 그 중 하나가 M65 원자포(Atomic Cannon 이하 M65)다.

 

 

 

 

 

버지니아 전쟁 박물관에 전시 중인 M65 원자포.

 

 

 

 

 

애버딘 미 육군 무기 시험장에 전시 중인 M65 원자포. Cannon으로 표시하지만 발사 매커니즘 상 고각 발사도 가능한 곡사포(Howitzer)에 가깝다.

 

 

 

핵을 찬양하던 시대


 

냉전 시기에 동서 양측은 상대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전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숨어 있었다. 특히 보수적으로 군사 전략을 취급하는 국방 당국자들은 상대 진영의 전력을 일부러 높게 평가하고는 했다. 나중에는 성능이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새로운 전투기, 전차 등이 등장하면 일단 우려의 눈빛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재래식 전력 중에서 미국이 특히 걱정하였던 분야는 제2차 대전부터 소련이 튼튼하게 다져 온 지상군, 특히 그 중에서도 무지막지한 기갑전력이었다. 중동전쟁처럼 제한적인 국지전에서 서방 전차들이 완승을 거두었기에 개별 전차의 성능은 오히려 앞선다고 평가되기도 하였지만 이는 단지 참고 자료일 뿐이었다. 특히 무기의 질적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던 냉전 초기에 양적 우위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다.


 

철의 장막 너머에서 서유럽을 향해 포진하고 있던 바르샤바 조약군의 기갑부대는 서방측이 열세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선 공표된 전차의 수량만으로 3배에 이르렀는데 이런 격차는 쉽게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결국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전략을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생각하여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대표적인 무기가 A-10 공격기와 공격 헬리콥터다.


 

하지만 이들은 1980년대에 본격 등장하였고 냉전 초기에 미국이 고안한 방법은 바로 핵폭탄이었다. 대규모 소련군 기갑부대가 공격하면 전술 핵폭탄으로 이들을 일거에 날려버리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당시 소련도 만일 전쟁이 개시되면 전술 핵폭탄으로 예정 진출로를 초토화시킨 후 기갑부대를 일거에 돌격시켜 점령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핵무기가 군사 사상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소련 기갑부대를 일거에 날려버리려던 미 육군의 열망

 

 

 

 

 

M65의 베이스가 되었던 독일의 K5 열차포. 흔히 안지오 애니라고 불렸다.

 

 

 

 

 

M65는 앞뒤에 전용 트랙터를 장착하여 철길 위로만 이동하는 K5의 한계를 벗어났다.

 

 

 

1949년 미 육군은 핵폭탄을 발사할 수 있는 장거리 야포의 연구를 시작하였다. 피카트니(Picatinny) 조병창의 로버트 슈바르츠(Robert Schwartz)가 이끌던 개발팀은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군이 운용하여 명성이 높았던 283mm 구경의 K5 열차포(이하 K5)를 참조하여 개발에 착수하였는데, K5는 255kg의 포탄을 64km까지 날릴 수 있는 거포 임에도 시간 당 15발을 발사할 수 있었고 열차에 탑재하였기에 기동력도 좋았다.


 

이런 장점을 살려 364kg 무게의 W9 전술핵탄두를 30km까지 날릴 수 있는 역사상 최초의 원자포인 M65가 탄생하였다. 280mm 구경의 M65는 유사시 수동으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유압식으로 설계한 단순한 구조였기에 기계적 신뢰성이 상당히 좋았다. 거친 야지에서도 너끈히 이동할 수 있게끔 전방과 후방에서 거대한 전용 트랙터로 견인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철길 위로만 이동하는 K5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개발에 참고하였던 K5는 1944년 안지오 전투 당시에 곤혹을 안겨주어 미군들이 ‘안지오 애니(Anzio Annie)’라고 불렀던 원한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종종 M65를 ‘원자(폭탄) 애니(Atomic Annie)’라고 불렀다. 사실 핵폭탄을 발사할 수 있는 대포라면 모두 원자포의 범주에 들어가므로 특별히 M65만을 원자포라고 정의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M65는 실전은 아니지만 핵폭탄을 실제로 발사하였던 유일한 원자포였다.


 

제작 완료 직후인 1953년 5월 25일 네바다에 위치한 사격장에서 실제 사격을 실시하여 15kt 위력의 W9 핵폭탄 발사에 성공하였는데 비록 전술 핵탄두였지만 그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아직 장거리 미사일이 제식화되기 전이라 유일한 핵 투발 수단은 공군의 폭격기 밖에 없었던 시기여서 M65는 핵무기 보유에 대한 미 육군의 열망이 담겨있는 최초의 플랫폼이라 할 만하였다.

 

 

 

 

 

▲ M65 원자포의 실사격 훈련 영상

 

 

 

우리나라에도 배치되었던 M64

 

그러나 M65의 최대 사거리인 30km는 핵폭탄의 충격과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아군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거리라고 보기 힘들다. 가시권에서 폭발이 보일 정도였던 당시의 실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아군의 피해도 있을 수밖에 없다. 만일 요즘에 그런 훈련을 하라고 지시한다면 당사자들이 먼저 거부하였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다. 그 만큼 당시에는 핵무기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았다.


 

어쨌든 실험에 성공한 미 육군은 이를 체제 선전의 대상으로 삼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고 1957년부터 제식화하였다. 총 20문의 M65가 제작되었는데 그 중 16문이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던 서독에 배치되었고 나머지 4문이 한국에 배치되었다. 한마디로 냉전 최 일선에서 공산군의 도발을 한방에 격멸해 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오래 활약하지 못하고 1963년부터 퇴역 처리 되었다.

 

 

 

 

 

▲ M65 원자포의 한국 배치를 전하는 미군 뉴스

 

 

 

 

 

M65에 자극 받아 소련이 개발한 2A3 Kondensator 2P 자주곡사포. 4대가 제작되었으나 실전 배치 여부 등은 확인되지 않고 현재 전량 퇴역한 상태다.

 

 

 

일단 미사일이나 로켓 같은 보다 편리한 핵폭탄 발사체계가 등장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가장 큰 결격 사유는 결국 핵폭탄을 사용하기에는 아무래도 사거리가 짧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방사능이나 낙진에 의한 아군의 피해도 염려스럽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자 운용자체가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모든 무기가 그렇지만 특히 핵무기는 다루는 사람에게도 부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어쨌든 상대와의 경쟁에서 지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냉전시대에 미국의 M65는 당연히 소련에게도 커다란 자극으로 다가왔다. 소련도 1956년부터 핵폭탄발사가 가능한 406.4mm의 구경을 지닌 2A3 콘덴새이터(Kondensator) 2P 자주곡사포의 개발에 나서 총 4문을 제작하였는데, 그 성능이나 실전 배치 여부는 알려지지는 않고 현재는 모두 퇴역한 상태다. 그 만큼 M65는 소련에게 즉시 응전을 강요하였다.

 

 

 

 

 

(좌) 280mm 구경의 포구 근접 사진 (우)요즘이라면 과연 저렇게 뒤 돌아서 폭발 장면을 볼 것인지 의문이 드는 핵폭탄 발사 장면 <출처: 미 육군>

 

 

 

 

승리를 위해?


 

사실 원자포는 방어를 위한 무기였지만 핵이란 단어와 위력에서 알 수 있듯이 풍겨 나온 이미지는 상대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다. 핵 만능 사상이 판을 치던 1950년대를 상징하던 이들 원자포들은 어느덧 다시 등장하기 힘든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인간이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할 수 있었다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증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원
무게 83.3톤 / 전장 26m / 전폭 4.9m / 전고 3.7m / 구경 280mm / 최대사거리 30k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출처    http://bemil.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27/20150527028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