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무기·장비

북유럽의 천둥번개, 사브 JA37비겐

有美조아 2014. 10. 6. 20:01

 

 

시범 비행 중인 사브 AJS37 비겐 전투기

 

 

 

무기는 소모품이다. 전시에는 급격히 소모되지만 평화 시라도 관리여부와 상관 없이 시간이 지나면 결국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작동이 가능하다면 제2차대전 당시에 사용하던 무기로도 전투를 벌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대에 뒤떨어진 무기의 퇴출은 당연한 것이므로 적절한 시기에 무기를 대체하여 전력을 일정한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국방 정책 중 하나다.

 


대개 군사 강국들은 어떤 무기가 실전에 배치될 때부터 이미 후속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정도로 준비가 철저하다. 예를 들어 F-15 전투기가 처음 미 공군에 배치 된 것이 1976년인데, 한창 양산과 배치가 이루어지던 1981년에 이를 능가하는 차세대 전투기에 대한 개념 연구를 시작하였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F-22다. 사실 이렇게 무기의 개발과 배치가 꾸준히 이루어지려면 국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전투기 분야에서 오랫동안 큰 목소리를 내던 영국이 1970년대 이후 자력 개발을 포기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만큼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볼 때 제트시대가 도래한 제2차대전 직후부터 지금까지 자력으로 개발한 전투기로 자국의 영공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스웨덴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은 적절한 시기마다 신예기를 등장시켜 주목을 받았고 현재도 JAS39 그리펜(Gripen)이 맹활약 중이다.

 


F-35나 라팔의 경우에서 보듯이 대외 판매는 전투기의 개발에 있어 중요한 문제다. 워낙 많은 비용이 들다 보니 자국 내 수요만으로 경제성을 맞추기 어려웠던 스웨덴은 개발 초기부터 적극적인 대외 판매에 나서 왔다. 그런데 시대를 선도할 만큼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미묘한 역학 관계로 말미암아 대외 판매에 실패하며 양산에 애를 먹었던 훌륭했던 제3세대 전투기가 있었다. 바로 스웨덴의 자랑이던 사브 JA37 비겐(Saab JA37 Viggen)이다.

 

 

 

그 시대의 자화상

 

처음 구상이 이루어진 1952년을 기준으로 삼자면 비겐의 개발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당시는 전투기 J29 터난(Tunnan)이 막 실전 배치되기 시작하였고 공격기로 사용될 A32 란센(Lansen)도 겨우 초도 비행에 나섰을 때였다. 바로 그때 스웨덴 당국은 아직 양산도 이루어지지 않은 란센의 후계기인 ‘프로젝트 1357’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앞에서 후속 무기의 개발과 배치에 대한 일반적인 프로세스를 언급하였지만 이러한 스웨덴의 준비는 상당히 앞섰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냉전이 공고해가던 1950년대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2차대전이 끝나고 다양한 제트 전투기들이 앞 다투어 등장하였는데, 기술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 이집트 같은 나라들도 이 분야에 뛰어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등장한 수많은 전투기들 중에서 제대로 역할을 담당하였던 기종은 많지 않았다. 6.25전쟁에 처음 등장한 MiG-15와 F-86은 실전 배치 된지 불과 2~3년 밖에 안 된 P-80이나 F-84같은 전투기들을 순식간 2선으로 물러나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기존 전투기를 능가하는 신예기의 개발에 계속 박차가 가해졌고 그렇게 속속 탄생한 당시 전투기들의 활동 역사는 극히 짧았다.

 


새로운 시대를 열은 MiG-15와 F-86도 정상에 등극한지 불과 4~5년이 지나 초음속 시대를 개막한 다양한 후속 전투기들에 의해 주력의 지위를 빠르게 넘겨주었을 정도였다. 이러했던 1950년대의 모습을 가장 잘 대변한 것이 바로 미국의 센추리 시리즈(Century Series)이고 소련의 대응도 이에 못지않았다. 중립국이지만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가 유별날 정도로 강했던 스웨덴도 이런 시대의 흐름에 뒤질세라 적합한 신예기의 개발을 서둘렀던 것이었다.

 

 

 

 

시계 방향으로 AJS37 비겐, A32 란센, J29 터난. 최초 비겐은 란센 공격기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이 이루어졌다.

 

 

 

최적화 된 설계

 

스웨덴 당국은 국토는 크지만 인구가 적고 동절기가 길어 평소 비행장의 유지 관리가 힘든 환경을 고려하여 비상시 고속도로에서도 신속히 출격시킬 수 있는 기종을 원했다. 그러려면 500미터 내외의 단거리에서 이착륙이 가능하여야 하며 최대한 기체가 작아서 보관이 편리하고 유지보수나 무장 장착도 최대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 했다. 게다가 시대의 조류에 맞게 초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기본이었다.

 


당장은 란센을 대체하려 공격기로 개발을 하지만 약간의 개조를 통해 훈련기, 전투기, 정찰기 용으로도 쉽게 개조할 수 있도록 플랫폼의 확장 능력이 좋아야 했다. 모든 종류의 군용기를 별도로 개발하기 힘들었던 스웨덴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지금의 JAS39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개발에 나선 사브는 먼저 적합한 엔진이 결정하여야 했는데,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플랫휘트니의 JT8D이었다. 라이선스 생산에 나선 볼보(Volvo)는 이를 기반으로 애프터버너의 기능을 향상시킨 RM8 터보팬 엔진을 제작하는데 성공하였다. 덕분에 짧은 거리에서 이륙할 수 있었고 역분사장치를 이용하여 단거리 착륙뿐만 아니라 지상의 좁은 공간에서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였다.

 


기체의 구조는 델타익이 적합하다고 결론 내렸는데, 스웨덴에는 당시 막 실전 배치를 앞둔 델타익 전투기인 J35 드라켄(Draken)이 있었다. 사브는 드라켄 개발의 경험을 발판으로 신예기는 5각형에 가까운 ‘크롭트델타(Cropped Delta)' 방식으로 정하였고 비행 안전성을 높이려 기수 측면에 카나드(Canard)를 부착하였다. 또한 기존의 낮은 쉘터(Shelter)에도 보관할 수 있도록 수직 미익이 경우에 따라 폴더 식으로 접힐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경우에 따라 보관 시에 높이를 낮출 수 있는 폴더 식 구조의 수직 미익(좌) 짧은 항속거리를 자랑하는 AJS37 비겐(우)

 

 

 

다양한 모습으로 배치되다.

 

일사천리로 개발에 나서 1966년 1호기가 완성되었고 이듬해 2월 8일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다. 각종 실험을 통과한 신예기에 만족한 군 당국은 양산을 결정하였고 천둥이라는 뜻의 비겐으로 명명하였다. 초도 물량으로 108기의 AJ37 공격기가 양산에 들어가 1971년 6월부터 실전에 배치되며 노후화되기 시작한 A32 공격기를 신속히 대체하여 나갔다.

 


비록 스웨덴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지만 AJ37은 작은 기체임에도 전술 핵폭탄을 장착하고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주로 요격용으로 사용된 비슷한 크기의 MiG-21에 비한다면 그 능력의 차이를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비겐의 장점은 앞서 언급한 다양성이라 할 수 있다. 1973년에 훈련기인 SK37이, 1975년에는 정찰기인 SF37과 해상정찰기인 SH37이 속속 개발되어 실전 배치되었다.

 


기동력이 뛰어난 비겐은 제공기 플랫폼으로도 손색이 없었는데 마침 스웨덴 공군은 1960년부터 제식화 된 J35의 대체를 서서히 준비하여야 할 시점이었다. 이런 필요에 따라 강력한 공대공 무장을 갖추어 제공 임무에 투입할 수 있는 궁극의 비겐이 탄생하여 1979년부터 스웨덴 공군에 인도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JA37 악트 비겐(Jakt Viggen)이다.

 


세부 기종 중 가장 많은 149기가 제작된 JA37은 룩다운, 슛다운 능력을 가진 에릭슨(Ericsson)제 PS-46/A 펄스 도플러 레이더를 탑재하여 최대 45킬로미터 이내까지 탐지할 수 있었으며 2발의 영국제 스카이 플래시 미사일 또는 JA37D형의 경우는 4발의 AIM-120 암람 미사일이나 6발의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의 운용도 가능하였다. 한마디로 제4세대 전투기에 근접한 성능을 발휘한 다목적 전술기였다.

 

 

 

 

비겐의 무장 능력을 보여주는 선전 자료

 

 

 

자주국방의 의지

 

원래 스웨덴은 비겐을 총 800기를 생산하여 A32와 J35를 대체할 계획을 세웠으나 1973년 발생한 오일 쇼크와 이에 따른 불황으로 말미암아 도입 물량이 대폭 축소되었다. 기존에 J35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 핀란드, 덴마크는 물론 네덜란드, 호주, 서독 등에도 판매를 시도하였으나 이들도 경제 여건이 좋지 않았고 새롭게 등장한 F-16, 미라주-2000처럼 뛰어난 제4세대 전투기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비겐은 동시기에 활약한 전투기들과 비교하여 결코 성능이 뒤지지 않지만 처음 등장한 AJ37기준으로 본다면 기본적으로 제3세대 전투기였다. 아무래도 스웨덴의 국력이 작다 보니 당장 판을 벌려놓은 비겐에 매달리게 되면서 미국이나 소련처럼 적시에 제4세대 전투기 개발을 시작하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때문에 본격 제식화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겐의 위치가 애매하게 되었고 이런 핸디캡을 절감한 스웨덴은 1970년대 말부터 후속기인 JAS39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결국 비겐은 스웨덴만이 유일 사용국이 되면서 최종적으로 329대로 생산이 종결되었다. 이후 스웨덴은 시대 상황에 맞춰 다양한 목적에 투입할 수 있도록 기존 기체를 AJS37, AJSF37, AJSH37등으로 꾸준히 개량하여 사용하였다. 처음부터 확장이나 개조를 염두에 두고 설계기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그렇게 묵묵히 스웨덴의 영공을 지킨 비겐은 모든 임무를 계승자인 JAS39에 물려주고 2005년 전량 일선에서 퇴역하였다.

 


실전 투입이 없어 정확한 성능을 평가할 수 없지만 카나드를 장착한 최초의 제트 전투기라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비겐은 기술적으로 시대를 선도한 걸작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겐에 담겨 있는 스웨덴의 자주 국방에 대한 의지라 할 수 있다. 중립국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없었다면 이런 뛰어난 전투기가 탄생하지 못하였을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멋진 모습 못지않게 의의가 컸던 전투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특징적인 캐노피를 갖춘 훈련기형 SK37의 이륙 모습

 

 

 

 

비겐의 힘찬 이륙 모습. 강력한 RM8 엔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제원(JA37 기준)

전장 16.4m / 전폭 10.6m / 전고 5.9m / 최대이륙중량 17,000kg / 최대속도 마하2.1 / 항속거리 2,000km / 작전고도 18,000m / 무장 30mm Oerlikon 기관포 1문, RB71 스카이 플래시 2발(JA37), AIM-120 암람 (JA37D) 4발, AIM-9 사이드와인더 6발, 135mm 로켓 포드 4문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출처    http://bemil.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26/20140226031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