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란스니스트리아 군은 1991년 9월 6일 창설되었으며 몰도바에서의 사실상 분리과정에서 벌어진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에 참전하였다. 4,500~7,500명 규모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동차 보병여단이 티라스폴, 벤데리, 르브니차와 두버사리에 위치한다. 1만 5천~2만 5천의 병력을 추가로 동원할 수 있다.
현재 트란스니스트리아 에는 러시아군이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개별적인 독립을 선언하였고, 1992년 3월부터 몰도바와 전쟁을 벌이다가 그해 7월에 정전(停戰)에 합의한다. 이에 따르면 3자(러시아, 몰도바,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공동 조정 위원회를 두어 강 양안의 20개 지역을 양보한 비무장지대의 안보 협정을 감독하도록 하였다. 정전 협정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정치적 지위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몰도바 법률상에는 여전히 몰도바의 영토로 되어 있으며, 아직은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 공인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제도는 대통령제 공화국이며, 자치 정부와 의회, 군대, 경찰, 우편 제도, 통화, 독자적인 헌법과 국기, 국가(國歌), 문장도 모두 갖추고 있다.
1918년 이래 드네스트르 강 서안의 몰도바와 동안의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1918년 이전에는 모두가 러시아 제국 영토였던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드네스트르 서안의) 몰도바가 포함된 베사라비아 지방은 루마니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으나, 트란스니스트리아 지방은 소비에트 연방에 속하여, 1924년에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한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29년 수도가 티라스폴에 두어졌는데, 이때의 면적은 8.100km²에 인구는 57만 명으로, 민족구성은 우크라이나인, 몰도바인이 주류였고, 그 외에도 러시아인, 유대인, 독일인 등이 있었다.
1940년 루마니아 왕국의 영토에서 이탈한 베사라비아와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 공화국이 통합되어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가, 독일군의 소련 침공과 함께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은 1941년부터 1944년까지는 실제로 루마니아 왕국 통치에 들기도 하였다.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1980년대말, 탈냉전 분위기에 따라 몰도바에서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과 민족주의가 대두하였으나, 1990년 5월 5일 티라스폴과 벤데르에서 새로운 몰도바의 국기를 내거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같은 해 9월 2일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PMSSR)'을 선언하여 몰도바로부터의 독립(그러나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은 아님)을 선언하였으나, 소련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1991년 8월 25일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로부터 독립선언을 하였고, 같은 해 11월 5일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공화국(PMR)의 성립을 선언하였으나, 둘 다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주민들은 몰도바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뒤 몰도바인과 같은 민족인 루마니아에 병합될 것을 우려하여, 1992년 3월부터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을 치렀다. 이 분쟁은 같은 해 7월, 총 1천5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채 러시아의 중재로 끝났다.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에게 몰도바는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거부하여, 이후 양측은 계속 갈등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처 http://korearms.egloos.com/118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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