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실 스위스 용병 이야기 입니다.
프랑스의 근위대는 오히려 몰려온 사람들에 합류해 그 때 까지
그들의 주군으로 모시던 프랑스의 왕 루이16세에 등을 돌렸죠.
궁 안에는 왕당파들과
돈 받고 고용된, 즉 용병인 빨간색 옷의 스위스 용병들 만이 끝까지 왕의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루이16세도 대세가 기울었다고 스위스인 용병들에게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명을 내렸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그러지 않고 계속 루이16세의 곁을 지켰다고 하죠. 이에 루이16세는 자국인인 왕실 근위대가 그를 배신한 판에 자기 곁을 지켜준 스위스 용병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궁 밖에 있던 사람들이 드디어 궁의 문을 열고 몰려들어오자
스위스 용병들이 그들을 향해 사격을 시작합니다.
이에 프랑스인들도 대응 함으로서 궁으로 몰려온 프랑스 사람들과
스위스 용병들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집니다.
스위스 용병들은 마지막 한사람까지 물러서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지만
프랑스인들은 포병대 까지 동원해 공격을 가하고
이에 결국 숫적, 화력적으로 모두 열세였던 스위스 용병들은 모두 다 죽고 왕궁은 프랑스인들에 의해 장악 당하고 맙니다. 이 때 프랑스 사람들이 스위스 용병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방식은 나폴레옹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로베스피에르 정권이 무너진후 프랑스 수도 파리에선 왕당파와 이에 동조한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죠. 방데미에르의 반란이라 불린 사건 입니다. 프랑스 왕실의 깃발을 앞세운 반란군은 자그만치 3만명에 달했고 그에 반해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공화정부의 군대는 5천명에 불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정치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있던 나폴레옹은 소위 말하는 그 때 까지 닦아논 연줄을 이용해
이 공화정부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잡습니다. 연줄로 손잡은 공화정부의 실세를 통해 진압군의 지휘관 자리를 잡은 것이지요.
나폴레옹은 이 때 처음 만난 그 못지않게 야심찬 젊은 기병장교 뮈라로 하여금 시 외곽의 벌판에 있던 대포와 포탄들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이 대표와 탄약들은 왕당파 반란군들도 차지하려 했던 것이었지만 나폴레옹의 명을 받은 뮈라의 기병대가 한발 앞서 가져간 것이지요.
반란군은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일반시민들이 무기만 든 오합지졸에 불과 했지만 나폴레옹은 포병대까지 동원해 강경진압 합니다.
결국 3만 VS 5천 이라는 아도적인 숫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이 지휘한 공화정부 진압군은 왕당파 반란군을 지리멸렬 시켜 버립니다.
나폴레옹은 시민들이 왕궁을 공격할 때 그 현장에 똑똑히 목격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시민들이 죽은 스위스 용병들의 시체에서 성기를 잘라 들고서는 흔들어 대는등의 장면을 목격하고서는 반란에 대한 안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방데미에르의 반란 때도 봐주지 않고 반란군을 강경진압 했다고 합니다.
출처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pn=1&num=18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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